한국 건설현장은 관행적으로 진행되는 업무들이 있습니다. 일부 발주자는 어떤 일이든 지시해도 된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상사들도 마찬가지고요. 이런 관행을 지켜본 대리, 사원들도 자신들의 후배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기도 합니다.
"발주자나 감리가 지시한다고 모든 업무를 다 수행해야 할까요?"
아닙니다. 발주자와 시공사는 계약관계에 있습니다. 계약에서 정한 내용은 반드시 수행해야 하는 것이고, 계약에서 정하지 않은 내용은 굳이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런데 한국 사회에 '갑을 문화'가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지만, 꽤 많은 시공사 직원들이 지시 받은 것은 받드시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공문으로 접수한 지시는 더욱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듯 합니다.
시공사 직원들은 계약서, 절차서, 지침서를 거의 읽지 않습니다. 계약 내용과 다르다고 한들 지시를 거부할 수 없었던 과거의 관습이 몸에 베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한국사회도 달라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변화를 느끼지 못하고 계시겠지만 꽤 많은 변화가 있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변화보다 생각의 변화가 더 급속하게 변하고 있습니다. 계약에 없는 부당한 요구를 받았을 때 당당하게 답변을 해 보세요. '갑'의 행동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예전에는 보통 이런식의 대응이었습니다. "닥치고 해. 무슨 말이 많아!" 그런데 최근에 "이런 지시는 계약과 다릅니다. 계약서 00조 00항에 따르면 지금 하시는 요구는 부당한 요구이고, 아마도 당사 법무에서는 클레임을 제기할 수도 있습니다"와 같이 이야기를 하면 '갑'도 움찔합니다.
물론 지금도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고, 지시 받은 것을 무조건 수행하는 현장에서는 발주자나 감리가 당당하게 무리한 요구를 시킵니다. 그런데 계약과 절차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보세요. 부담스럽더라도 조심스럽게라도 이야기를 꺼내 보세요. 그리고 상대의 대응을 한 번 살펴보세요. '움찔' 합니다. 머리가 도는 마음의 소리가 들립니다. '계약서? 계약에 뭐라고 되어 있지? 시공사가 계약을 근거로 클레임을 제기하면 난 어떻게 되지?'
항상 순방향으로 진행되는 것은 아닙니다. 계약과 절차를 몰라서 당했다고 생각하는 일부 '갑'은 계약과 절차의 조항 하나하나를 따지며 지시할 수도 있습니다. 훨씬 더 괴로운 상황이 될 수도 있죠.
그런데 여러분께서 여러분이 하는 일에 대한 계약과 절차, 지침을 정확히 알고 일을 수행하고, 무리한 요구나 분쟁이 발생했을 때 계약과 절차, 지침을 근거로 상대를 설득해 보세요. 무조건 수행하는 것과 상황은 많이 달라집니다. 무조건 싸우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계약, 절차, 지침에 없더라도 합리적인 수준에서는 수행할 수도 있습니다. 조금 힘들더라도 해 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정확히 해야 할 일인지, 아니면 할 일은 아니지만 협조 차원에서 해 주는 것인지를 알고 일하는 것과 무조건 일하는 건 분명 다릅니다.
프로젝트에 투입되어 일을 해야 한다면, 최소한 본인 업무에 해당하는 부분의 계약서, 절차서, 지침서는 반드시 읽고 이해하고 있어야 합니다. 외울 수는 없기 때문에 중요한 사항은 정리해서 수첩에 넣고 다니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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