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10년 뒤에 후배들이 이렇게 말할 것 같다. "10년이 지났는데도 공정관리는 발전이 없네"
"공정관리는 매우 중요하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현실을 그렇지 않다. 공정관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설인들은 극소수다. 대부분은 중요하다고 말로만 한다. 설령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건설인들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실천하는 건설인들은 극소수다.
1) 공정관리자
중요한 업무를 신입사원이 하는 것을 봤나? 중요한 업무를 현채직이 하는 것을 봤나? 공정관리가 중요하다고 하면서 그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을 신입사원 혹은 현채직 신입직원을 배치한다는 것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증거다.
2) 공정표 작성 및 수정
공정관리의 가장 기본은 공정표다. "공정표를 만들어 봤는가?"라고 물으면 대부분 만든다고 말한다. "만들어진 공정표를 보고 일하는가?"라고 물으면, "보지 않는다"라는 답변이 50%를 넘을 것이다. "공정표에 실적을 반영하는가?"라는 질문에는 고개를 갸우뚱 할 것이다. "공정표에 실적을 왜 넣어요?"라고 반문하는 건설인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일정이 바뀌면 수정하나요?"라는 질문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승인공정표를 바꾸면 어떻게 하나요?"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다.
공정표 관리의 기본인 '공정표 작성, 실적 반영, 현실적으로 수정 등을 전혀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공정표는 어디에 있나요?"라는 질문에는 "소장실에 걸려 있지"라던가, "계약서에 첨부되어 있을 껄"과 같은 대답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
3) 공정표의 형식
공정관리의 가장 기본은 공정표다. 공정표는 다양한 형식으로 작성될 수 있다. 상황에 따라서 바챠트가 효과적인 경우도 있고, CPM 이론을 적용하여 변화를 예측하는 것이 효과적인 경우도 있다. 간단하게 표로 만들어서 관리하는 방법도 있으며, 마일스톤만 관리하는 것도 장점이 있다.
"공정표의 형식은 뭔가요?"라는 질문에 "바챠트지"라고 대답하는 건설인이 대부분일 것이다. 아직 한국 사회는 CPM 공정표가 뭔지 모르고 있고, 간혹 CPM의 모양을 흉내내고 있지만, Bar Chart에 일부 화살표를 추가한 것이 대부분이다. CP(Critical Path)도 Total Float이나 Longest Path로 설정하는 것이 아니라, 일부 직원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작업을 빨간색으로 표시하는 방법이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CPM은 1950년대 후반에 개발되어 지금까지 가장 효과적인 공정표 관리 방법으로 정착되어 있다. 그런데 대한민국 건설 현장의 '공정관리'는 아직 1950년대에 머물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4) 공정표 작성 및 운영
공정표를 운영하는 방법을 보면 더욱 발전이 없다. 공정표는 만드는 것 보다 운영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신이 아닌 이상 완벽한 공정표를 만들 수 없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현실을 반영하면서 수정해 나가는 것이 공정표이고, 공정관리의 기본이다.
그런데 현실은 정 반대이다. 공정표를 만드는데 집중한다. 특히 공기와 예산(공사비)에 집중한다. 예산에 집중하다보니 공정표의 액티비티를 예산 내역 기준으로 만드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리고 따지는 것이 액티비티의 기간산정이다. 한국 건설인들이 보편적으로 정확하다고 생각하는 공기산정 방식은 '모수산정'이다. PMBOK에서도 8가지의 공기산정 방식을 제안하고 있고, 실제로 많은 프로젝트에서 담당자의 '감'이나, 타 프로젝트의 사례를 공기로 적용함에도 불구하고, '모수산정'만이 정답이라는 생각은 바뀌지 않는 것 같다. 설령 모수산정이 가장 정확한 방법이라고 하더라도 모수산정에는 많은 가정이 들어간다. 작업조를 1조로 가정하고 산정하는 것과 2조로 가정하고 산정하는 것은 기간이 달라지게 된다. 1조로 가정하고 산정했는데, 2조가 투입되면 공정표를 수정해야 한다는 의미다. 또 설령 표준생산성 같은 것이 있어서 '1조 투입, 생산성은 표준생산성 기준'이라는 가정을 했다고 하더라도 실제 투입된 인원들이 표준생산성에 미치지 못한다면 기간을 수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한국 사회는 공정표를 만드는데만 집중하고, 만들어진 공정표가 정합성이 높은가만 따지기 때문에 '표준생산성'이 더 중요한 것이다.
만들어진 공정표는 거의 보지 않는다. 대부분의 건설인들이 보는 것은 '감'이다. 프로젝트에서 권한이 있을 수록 이렇게 말하는 성향이 있다. "내가 보기엔 늦었어. 만회대책 작성해"라고 말한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보다 권한이 조금 적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공정표를 일부 보기도 한다. "3월 1일에 착수하기로 했는데, 3월 10일에 착수했네. 10일이나 늦었으니 만회대책 작성해" 이게 한국 건설인들의 생각이다. 목표는 전체 일정이 지연되지 않도록 조금은 빠르게 설정해 놓는 것이 공정표 작성의 기본이다. 가능하면 액티비티들은 어느정도의 Total Float을 확보한 상태에서 목표일정을 설정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설정되어 있는 목표를 지키지 못했다고, 질책을 하고 만회대책을 작성하라고 하면 그 이후의 모든 공정표는 최대한 늦은 일정으로 작성이 되게 된다. 공정표를 최대한 늦은 일정으로 작성한다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한국 건설인들 중 권한이 있는 사람들에게 만연해 있는 관리방법은 '윽박지르는 관리 방법'이다. 무조건 윽박지르는 것이다. 문제가 있는지, 실제 늦었는지를 따지는 것이 아니다. "틀렸어!!! 이실직고 해!!!"라는 식이다. 합리적인 설명을 하면 말꼬리를 잡는다. 문서의 극히 일부 부분만 지적을 한다. 지적할 게 없으면 오타만 잡아낸다. "오타가 있으니 이 보고서는 엉터리야"라는 식이다.
이런 식의 공정관리가 지속되면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 "내가 보기에 늦었어"라던가, 액티비티 하나 하나의 목표를 달성했느냐를 따지면 공정관리의 목적을 잃게 되는 것이다.
5) 어떻게 해야 할까?
그다지 묘안이 떠오르지 않는다. 미적분을 풀기 위해서는 사칙연산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체격이 너무 커져버렸다. 겨우 덧셈과 뺄셈은 하지만, 곱셈, 나눗셈은 아직 잘 하지 못하는 성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사칙연산은 초등학생이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고, 사칙연산은 못하지만 우리는 성인이니 미적분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결국 덧셈, 뺄셈만 가지고 미적분을 푸는 흉내를 내고 있으니 항상 실패만 하는 것이다. 덧셈으로 풀다가 실패하면, 뺄셈으로 한 번 풀어보라고 시키고, 뺄셈으로 풀다가 실패하면, 덧셈과 뺄셈으로 풀어보라고 시킨다. 곱셈을 한 번 공부해서 해 보라고 시키고, 직원들은 나름 노력을 해서 나눗셈까지 공부를 하지만 미적분은 풀 수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포기를 하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누군가가 다시 이야기를 시작한다. "우리 미적분을 한 번 풀어보자. 덧셈으로 하면 될거야"
6) 돌고 돈다
굳이 구분을 하자면 아래와 같다.
2000년 즈음에는 EVMS라는 용어가 건설 프로젝트 공정관리에 최대 이슈였다. EVMS만 하면 프로젝트의 문제점을 사전에 다 예측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래서 꽤 많은 대기업 건설회사들이 시도를 했다. 돈과 노력을 투자했지만 지금은 사용하는 회사가 거의 없다. 그런데 최근 다시 EVMS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회사가 하나씩 생기기 시작했다.
2002년 즈음에는 '비용-일정 통합관리'라는 용어가 보편화되기 시작했다. 이건 생각보다 빨리 없어진듯 하다. EVMS는 'EV/PV=SPI'라는 비교적 간단한 수식으로 이해가 되지만, 비용-일정 통합관리는 접근 자체가 쉽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2004년 즈음에는 '표준생산성'이라는 용어가 퍼지기 시작했다. 아마도 이런 저런 시도를 통해 CPM 비슷한 공정표가 만들어 지기 시작했고, 공정관리를 전문으로 하는 직원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던 시기와 맞물려 있는 것 같다. 시공직원들이 작성하던 공정표를 공정관리자라는 사람이 작성하는 현장도 늘어나기 시작했을 때, 시공을 잘 모르는 공정관리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이 표준이었기 때문인 듯 하다. 잘 모르는 일정에 대해 공정표를 만들어야 했고, 정합성이 높다는 증명을 할 수 있는 방법은 '표준'이라는 단어였을 것이다. 그러나 프로젝트는 유일하다는 기본을 간과했고, 결국 표준이라는 것은 건설 프로젝트에서 만들기 어렵다는 것도 증명하지 못하고 사라졌다.
2006년 ~ 2008년은 CPM의 시기였던 것 같다. 그동안 만들어졌던 공정표는 바챠트에 줄을 그은 공정표였다. 호박에 줄을 긋는다고 수박이 되지 않듯, 바챠트에 줄을 긋는다고 CPM 공정표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이때 CPM 공정표를 만들기 위해 고민이 시작되었고, PMBOK에 대한 공부, 자원 평준화, 추세분석과 같은 기법이 도입되기 시작한 시기였다.
2010년 즈음에 해외프로젝트가 늘어났고, 해외 발주자는 'Scheduler'를 프로젝트에 투입하길 원했고, 이런 저런 공정관리 성공사례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공정관리자'라는 용어가 본격적으로 도입되고, 많은 프로젝트에서 '공정관리자'를 하나의 직종으로 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공정관리자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확히 몰랐던 '공무'는 신입직원에게 '공정관리자'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본인이 하기 싫어 했던 '취합'이라는 업무를 공정관리자에게 지시했고, 이런 지시를 단순하게 따랐던 공정관리자는 대부분 프로젝트를 떠났다. 아직은 진행형이지만 꽤 많은 프로젝트에서 '공정관리자'는 필요없다는 인식이 확대되고 있는 듯 하다.
2012년 즈음은 감시의 시기인 듯 하다. '감시'라는 용어가 그 전에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꽤 많은 회사들이 '감시'의 역할을 공정관리팀에서 해야 한다는 인식이 가장 확대된 시기가 아닌가 싶다. 특히 본사에 공정관리 조직이 생기면서 '감시'를 통해 프로젝트를 '통제'하겠다는 의식이 확대된 시기이다. 1~2년 정도 이런 저런 보고서를 만들고, '감시'를 성공하는 듯 했지만 프로젝트에서 정보를 공개하지 않으면 할 수 있는 것이 전혀 없다는 것을 느겼던 시기라고 보인다.
2014년이 지나면서 한국의 많은 건설사들이 해외에서 손실을 보고 해외 프로젝트를 포기했다. 이 과정에서 EOT Claim의 중요성이 인식되기 시작했고 EOT Claim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CPM 공정표의 작성, 운영이 필수라는 것을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다. 문제는 CPM 공정표를 작성, 운영할 수 있는 '공정관리자'를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많은 공정관리자들은 '취합' 업무에 지쳐서 대부분 떠났고, 극히 일부의 공정관리자들은 취합과 보고업무를 해야 하느냐라는 논란 속에서 싸우고 있다.
2016년은 공정관리에서 매우 중요한 시기다. EVMS도 실패, 비용-일정 통합관리도 실패, CPM도 실패, 공정관리자 투입도 실패, 본사 공정관리 조직을 이용한 현장의 감시도 실패, EOT Claim에서의 역할은 정의도 못하고 실패. 결국 꽤 많은 회사의 본사 공정관리 조직이 해체되기 시작한다.
2018년. 공정관리의 움직임이 이상하다. EVMS라는 용어가 이곳저곳에서 등장하기 시작했고, 비용일정 통합관리라는 용어도 들리기 시작한다. 표준생산성을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어떤 회사는 본사에서 '감시'를 효과적으로 하는 것이 공정관리라는 말이 들린다. 이건 2000년 부터 2016년까지의 공정관리 실패 사례가 한꺼번에 등장한 듯 한 느낌이다. 그런데 하나 빠져 있는 말이 있다. '공정관리자'를 양성하자는 이야기다.
아마 10년 뒤에 후배들이 이렇게 말할 것 같다. "10년이 지났는데도 공정관리는 발전이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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